평협소식

신앙의 뿌리, 교구 공동체의 첫 샘인 공소(公所)
  • 작성일2021/04/12 12:32
  • 조회 454

 

신앙의 뿌리,

교구 공동체의 첫 샘인 공소(公所)

문화영성연구소

 

공소 순례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공소 순례 전에 우리가 찾아갈 공소란 어떤 곳이고, 원주교구에는 어떤 공소가 있는지 알아봅니다.

 

1. 공소(公所)란?

공소는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신자 수가 적거나 사제가 부족하여 본당 주임 사제가 상주하지 못하는 본당 구역내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공적으로 인정하여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로 공소(公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소 신자들이 모임을 하는 장소(건물)도 공소하고 합니다. 이 공소는 우리나라 신앙 역사 안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2. 교우촌과 공소의 시작

우리나라에 처음 신앙이 소개된 직후부터 우리 교회는 극심한 박해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분과 재산을 버리고 살던 곳을 떠나 교우들끼리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우들이 모여 살던 곳을 교우촌(敎友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교우촌에 사제가 방문하여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집전하면서, 점차 교우들을 대표하여 신앙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람도 필요했고, 고정적으로 모일 장소도 필요했습니다. 교우촌의 대표는 사제가 임명하여 회장이라고 불렸고, 신자들이 모일만한 조금 큰 마루같은 곳이 있는 집에서 미사와 성사를 보면. 그 집을 공소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고정적인 모임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별도로 마련되면 그곳은 ‘공적으로 인정하여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로 공소(公所)라고 하였습니다.

 

3. 공소의 신앙생활과 공소회장

박해시대에는 우리나라에 사제가 상주하는 본당이 없었습니다. 단지 배론의 성요셉 신학교에 사제가 상주하는 정도였고,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이나 최양업 신부님 같은 분은 한 곳에 정주(定住)하지 못하고 늘 이동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니 교우촌과 공소에 사제가 방문하는 것도 어려워 1년에 한, 두 차례의 방문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제가 방문하게 되면, 신자들은 사제가 앞서 방문한 교우촌 근처까지 찾아가 사제를 안내하였고, 미사를 드릴 때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고해성사를 받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에는 그 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사제가 상주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모든 일은 회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공소회장은 공소 전체를 이끌며 미사를 드리지 못할 때에는 공소예절을 집전하고 예비자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유아 세례나 대세를 집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혼인과 장례를 주관하고 냉담자의 회두(回頭, 냉담하였던 신자가 다시 돌아오는 것)와 권면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외에도 신자들을 위한 신앙상담, 공소의 건물과 재산관리까지 모두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교우촌과 공소가 신앙으로 똘똘 뭉쳐 살게 된 데에는 회장님들의 역할이 아주 컸습니다.

 

4. 원주교구의 교우촌과 공소

우리 원주교구에 처음 교우촌이 형성된 곳은 제천 배론과 횡성의 풍수원이고 그 이후, 1800년대 중·후반에는 평창의 하일과 대화, 제천 백운의 화당리(꽃댕이), 원주 문막 손곡리의 서지마을, 영월의 주실 등에도 큰 교우촌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에는 숨어 살던 교우들이 밖으로 나와 풍수원 근처 금대(검두)나 오상골, 창촌(매나미), 새점터(돌꽂이, 석화)같은 곳에 자리를 잡아 공소로 이어졌습니다. 또 용소막에는 본당이 세워지고 학산 공소가 자리 잡았고, 평창과 대화 지역에도 새롭게 성당이 세워지고 공소들이 생겨 났습니다. 횡성과 원주지역에는 도곡(도새울) 공소, 곤의골 공소, 대안리 공소, 후리사 공소 같은 공소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외 많은 공소들은 본당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그러니 우리 교구 많은 공소의 뿌리는 박해시대부터 이어져 온 교우촌이나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가 박해 이후 조금 큰 성당 근처로 나와 생활하게 된 교우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공소의 신자들은 신앙에 대한 자부심도 더 강하고, 일상적인 기도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고 하며, 오랜 신앙 가문으로서의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의 공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원주교구 초기에는 많을 때에는 모두 118개의 공소가 있었습니다. 그 중 20개의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반세기만에 81개 공소가 폐쇄되어 지금은 37곳의 공소가 남아있습니다.

많은 공소 신자들이 도시로 떠나갔고, 또 연세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젊은 사람들이 부족하니 예전처럼 활발하게 운영되지 못하는 곳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소에서는 스스로 기도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께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공동체와 서로 어울려 사는 우리 신앙 공동체의 아름다운 미덕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소 순례를 통해 옛 신앙을 간직한 공소와 공소신자들을 통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하고 단단하게 신앙의 길을 걷는 그 믿음을 되새겨 보고, 또 공소의 어려움도 함께 살펴 나누는 마음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신앙의 뿌리, 우리 교구 공동체의 첫 샘인 공소를 순례하는 모든 교우들의 발걸음을 하느님께서 보호하고 지켜주시며,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